[외과]식욕이 없는 노령묘 응급 수혈과 호스피스, 고양이 장중첩, 장종양
2026-04-30

안녕하세요, 백산동물병원입니다.
고양이들은 아파도 티를 잘 내지 않는 참을성이 많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 노령묘가 평소와 달리 밥을 먹지 않고, 침을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면 몸속에서 아주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2주간 밥을 먹지 못해 지역 병원을 찾았다가 극심한 빈혈로 본원에 전원되어, 수혈과 응급 수술을 받았던 11살 아이의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빈혈 수치 6.4%
1분 1초가 시급했던 첫 만남
아이가 저희 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위태로웠습니다. 정상 고양이의 빈혈 수치(HCT)가 30%대 이상인 반면, 이 아이는 무려 6.4%까지 떨어져 있었고, 혈압은 40까지 낮아진 응급 상태였습니다. 가슴 쪽에는 흉수도 차 있었고요.
당장 피를 수혈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
그런데 검사 결과 아이의 혈액형은 고양이 중에서도 매우 드물어 구하기 힘들다는 B형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백산동물병원은 원내에 B형 혈액을 포함한 혈액을 상시 보유하고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지체 없이 즉각적이고 안전하게 수혈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빈혈의 원인을 찾아서: 초음파에서 발견된 '장중첩'
수혈을 진행하며 아이의 호흡과 바이탈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도대체 왜 이렇게 빈혈이 심하고 밥을 못 먹었는지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 복부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 화면 중앙에 마치 과녁판이나 양파 단면처럼 동심원을 그리는 뚜렷한 형태가 보이시나요? 이는 장의 한 부분이 연결된 다른 장의 내강으로 말려 들어가는 장중첩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장이 겹쳐서 막히게 되면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음식물이 지나갈 수 없으며,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장조직이 괴사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발견 즉시 중첩된 장을 원래대로 환원하거나 절제해야 하는 응급 수술 상황입니다.
응급 개복 수술, 그리고 숨겨져 있던 진짜 원인
※ 아래에는 흑백 처리된 수술 환부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혈로 어느 정도 상태를 끌어올린 뒤, 막힌 장을 해결하기 위해 지체 없이 응급 개복 수술(장 문합술)에 들어갔습니다.
▲ 개복 후 확인한 장의 모습입니다. 초음파에서 본 것처럼 장의 한 부분이 다른 장 안으로 깊게 말려 들어가 심하게 부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중첩된 장을 조심스럽게 빼내어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어린 고양이들의 장중첩은 심한 장염이나 기생충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노령묘에서 장중첩이 발생했다면 장벽에 생긴 종양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장벽에 자리 잡은 종양 덩어리가 비정상적인 장의 연동 운동을 유발하여 장이 서로 겹쳐 말려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죠.
수술 중 확인해 보니 역시나 중첩된 장 부근에서 두 개의 뚜렷한 종괴가 발견되었습니다. 저희는 문제가 발생한 장 부위를 안전하게 절제하여 문합하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잘라낸 종양 덩어리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외부로 조직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 치료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조직 검사'
며칠 뒤 도착한 조직 검사 결과는 안타깝게도 악성 종양인 장 선암종(Intestinal Adenocarcinoma)이었습니다.

▲ 외부 기관에서 회신된 조직 검사 결과지입니다.
종양 수술에서 조직 검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떼어낸 혹이 단순한 염증인지, 림프종인지, 선암종인지에 따라 앞으로 아이에게 어떤 내과적 처치를 해야 할지, 항암 치료의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조직 검사 결과가 있어야만 비로소 아이에게 꼭 맞는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 보호자님의 어려운 선택, 호스피스
수술 후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관리를 받았습니다. 오랜 기간 굶은 아이에게 다시 영양을 공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재급여 증후군을 막기 위해 저인혈증을 교정하며 비강 튜브로 조심스럽게 유동식을 급여했습니다. 아이도 스스로 밥을 먹으려는 자발 식욕을 조금씩 회복해 주었죠.
하지만 악성 종양의 진행은 무서웠습니다. 입원 중 신경 증상이 나타나고, 입원 13일 차에는 복수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복수 세포학 검사에서도 종양 세포로 추정되는 것들이 관찰되어 종양이 신경계 등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러한 악성 종양은 수술 이후 전이나 추가적인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항암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님께서는 아이의 상태와 앞으로의 삶의 질을 깊이 고민하신 끝에, 항암 치료 대신 호스피스(Hospice)를 선택하시고 아이와 함께 퇴원을 결정하셨습니다. 무리한 병원 치료로 아이를 지치게 하기보다는,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집에서 남은 시간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보호자님의 크고 깊은 사랑이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 마치며
노령묘가 지속적인 식욕부진을 보인다면 절대 가볍게 넘기셔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는 그저 기운이 없어 보여도, 뱃속에서는 장이 막히고 종양이 자라는 응급 상황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평소와 다르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빠르게 병원을 찾아주세요.
저희 백산동물병원은 B형 수혈부터 응급 수술, 그리고 중증 환자의 입원 관리까지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아이의 편안한 마지막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리신 보호자님의 애틋하고 따뜻한 결정 또한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하고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