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 ][고양이 혈액 종양] 구토와 식욕 부진으로 내원, 그리고 따뜻한 이별 준비
2026-05-15

안녕하세요, 백산동물병원입니다.
진료실에서 보호자님들과 마주 앉아 검사 결과를 말씀드릴 때, 수의사로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무거운 질환을 설명해 드려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갑작스러운 구토와 식욕 부진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무거운 병을 진단받았지만, 무리한 치료 대신 아이의 편안함을 위해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선택하신 한 보호자님과 아이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갑자기 밥을 끊고 토하기 시작한 아이
평소 큰 병치레 없이 지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구토를 하고 밥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아 저희 병원을 찾아주셨습니다. 고양이들이 밥을 안 먹는 이유는 가벼운 위장염부터 심각한 전신 질환까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곧바로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 예사롭지 않았던 혈액검사 수치들



< ▲ 내원 당시 진행한 혈액검사와 혈액가스 검사 결과 >
혈액 검사 결과를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신장 수치가 훌쩍 뛰어오른 질소혈증(Azotemia) 상태였고, 체내 급성 염증을 나타내는 fSAA 수치도 크게 상승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고칼슘혈증(이온 칼슘 농도 증가)'과 '고글로불린혈증'이 동반되었다는 점입니다. 고양이에게서 이 두 가지 수치가 함께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날 때는, 몸 어딘가에 심각한 종양(암)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 간과 비장의 변화, 그리고 세포 검사
이어서 몸속 장기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 복부 초음파 검사


< ▲ 아이의 복부 초음파 사진 >
간과 비장이 정상보다 많이 커져 있었고, 조직의 음영(초음파상으로 보이는 밝고 어두운 패턴) 역시 정상적이지 않고 불규칙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간과 비장이 이렇게 커져 있는 원인을 알기 위해, 전신 마취가 필요한 조직검사 대신 주사기 바늘로 해당 장기의 세포만 살짝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세포 검사(FNA)'를 조심스럽게 실시했습니다.
■ 비장 FNA 세포 검사


< ▲ 간과 비장에서 채취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
안타깝게도 간과 비장 모두에서 동일한 형태의 비정상적인 둥근 세포(원형 세포)들이 다수 관찰되었습니다. 이 세포들은 형태학적으로 '형질세포(Plasma cell)'와 아주 유사한 특징을 띠고 있었습니다.
비정상적인 혈액 검사 수치(고칼슘, 고글로불린)와 초음파, 그리고 세포 검사 소견을 종합해 보았을 때, 아이는 다발성 골수종이나 형질세포종 같은 '혈액 및 골수 유래 종양 (Myeloid-related disease)'일 가능성이 매우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 치료 플랜: 수의학에서의 항암 치료는 '삶의 질'이 목표입니다.
이러한 혈액/골수 관련 종양의 표준 치료법은 내과적인 항암 치료입니다. 종종 '항암'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이가 몹시 고통받을까 봐 지레 겁을 내시는 보호자님들이 많으십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의 항암 치료는 '무리한 수명 연장'이 아닌 '고통 없이 좋은 삶의 질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고양이들은 사람보다 항암제를 훨씬 잘 견디는 편입니다.
특히 이런 혈액 종양의 항암 치료 중에는 골수 억제로 인한 심각한 빈혈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저희 병원은 원내에 수혈 혈액을 상시 보유하고 있어 응급 상황 시 언제든 즉각적이고 안전한 수혈 처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든든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보다 안심하고 항암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치료 대신, 아이의 편안함을 선택한 보호자님"
저희는 이러한 항암 치료의 방향성과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안전한 관리 시스템, 그리고 앞으로의 예후에 대해 보호자님과 아주 길고 깊은 상담을 나누었습니다.
보호자님께서는 아이의 평소 예민한 성향과 앞으로의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깊이 고민하신 끝에, 적극적인 항암 치료 대신 아이가 남은 시간 동안 병원에 오가는 스트레스 없이 집에서 덜 아프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Hospice)' 케어를 선택하셨습니다.
저희 의료진은 보호자님의 뜻에 깊이 공감하며, 아이의 통증 관리에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몸에 진통 패치를 부착해 주고, 억지로 밥을 먹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코를 통해 편하게 유동식을 급여할 수 있는 비강 튜브를 장착해 드렸습니다.

▶ 마치며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든든한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으로 병마와 싸우는 것도 사랑이고, 아이가 겪을 스트레스를 헤아려 욕심을 내려놓고 편안한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참으로 크고 깊은 사랑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정답은 없습니다.
백산동물병원은 보호자님이 아이를 위해 내린 모든 결정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그 선택의 길 위에서 아이가 최대한 고통받지 않고 편안할 수 있도록 언제나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